4500만 명의 소통이 단절되고 약 400억 원 규모의 피해 보상액을 야기한 사고. 어떤 사고인지 짐작하셨나요? 불과 얼마 전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이야기입니다.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는 초연결 사회,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뒤흔든 IT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상세 분석 결과를 지켜봐야하겠지만, 지금까지 경찰과 소방의 조사에 따르면 화재의 발화 지점으로 SK온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지목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미 지난달 21일 진행한 SK C&C 판교캠퍼스를 압수수색에서 배터리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하는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소방이 확보한 CCTV 영상에는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튄 뒤 화재가 발생한 모습이 담겼다고하네요.
‘리튬 이온 배터리’와, ‘BMS’.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요? 현재 전기차를 움직이는 핵심 기술들입니다. 혹시 이번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처럼, 전기차를 이용할 때에도 화재 사고가 나는 것 아닌지 걱정되신다고요?
화재 가능성을 대폭 줄인 배터리 신기술,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 될 시대가 머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번 화재 사고에서 카카오가 리튬 이온 배터리가 아닌 다른 배터리를 사용했다면, 이번 사고와 같은 대규모 IT재난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화재 위험을 줄일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 오늘 체인라이트닝은 ‘전고체 배터리’를 집중 조명해봅니다.
배터리 화재 해결할 미래 기술, 전고체 배터리란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고체로 이뤄진 배터리를 말합니다. 배터리 안에는 양극과 음극이 있는데, 이온은 그 사이 위치한 전해질을 통과하며 충전을 일으킵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전해질이 액체로 되어 있어 이를 분리해줄 분리막이 함께 포함돼있지요.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 자체가 분리막 역할을 합니다. 전해질이 고체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별도의 분리막이 없어도 양극과 음극을 분리해줍니다.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게 되면 화재의 발생 위험이 있는데,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로 이뤄진 전해질이 양극과 음극의 분리를 강화해 화재 위험을 낮출 수 있지요.
전고체 배터리는 별도의 분리막이 필요없기 때문에 배터리 안을 더 많은 양·음극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같은 부피라면 배터리 용량을 늘릴 수 있고, 분리막이 없어 배터리를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무게 또한 더 가볍습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여러 개의 단전지를 직렬 연결해서 전압을 높이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단전지 안에서 전극을 층층이 직렬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배터리를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지요.
온도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하는 정도가 작은 고체로 내부를 구성했기 때문에, 안정성과 그에 따른 안전성 면에서 우수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왜 아직 더 기다려야 하나요?
이토록 장점이 많은 전고체 배터리인데, 아직까지는 리튬 이온 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자동차, 삼성SDI 등 국내 기업에서 전고체 배터리 연구를 추진하고 있지만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점을 2026년 혹은 그 이상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화재 안전에 있어 특히 우수성을 보이는 전고체 배터리는 성능과 용량에 있어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부족한 점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기까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들은 어떤 것이 있는 걸까요.
[1] 저성능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을 통해 이온이 움직이므로 이온 전도도가 액체 전해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전해질 같은 경우가 보통 고체 전해질의 이온전도도 같은 경우가 액체 전해질의 한 1천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액체 상태의 전해질에서는 이온이 자유롭게 움직여 충전을 원활하게 할 수 있지만, 고체 상태의 전해질에서는 이온이 움직이는 경로가 고체 결정 사이사이 정해진 길로만 움직일 수 있어 성능이 보다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2] 배터리 용량
국내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 중인 기업들은 상용화 시점을 2026~2027년 경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용화 시점에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의 용량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 없지요. 국내에서 전고체 배터리와 관련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2026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고분자계 전고체 배터리’로 에너지 밀도 600Wh/L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750Wh/L 수준인데, 이에 비하면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은 상황이지요. 획기적인 용량 기준인 900Wh/L을 달성하려면 2030년 이후는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 고비용 소재
고체 전해질의 소재의 가격은 매우 비싸고 현재 세계적으로 배터리 광물 자원 확보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배터리에 주로 사용되는 소재로는 리튬과 니켈이 있지요.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연초 대비 45.8%, 리튬 가격은 38.4% 상승한 바 있습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치열한 자원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배터리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민관 협력 ‘K-배터리 얼라이언스’를 지난 1일 출범시켜 지원에 나섰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이차전지 산업에 2030년까지 ▲기술 개발(20조5000억) ▲시설 투자(30조5000억) 등 총 50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배터리 개발을 위한 민관 협력 ‘K-배터리 얼라이언스’에서 리튬과 니켈을 중심으로 핵심 광물을 개별 기업 단위로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해외 순방을 통해 정부간 MOU 등으로 소재 확보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 국내 기술, 어디까지 왔나?
LG에너지솔루션 – 실질적인 상용화 위한 ‘상온’ 충전 기술
전고체 배터리는 60도 이상 고온에서만 충전이 가능한 기술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전기차를 충전하는 온도 환경이 언제나 60도 이상으로 주어질 수는 없는 법이죠. 일상 환경에서 전기차 충전이 가능하려면 고온에서만 충전이 되는 전고체 배터리의 충전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신기술을 개발한 국내 기업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LG에너지솔루션입니다
전고체 배터리 최고 권위자인 셜리 멍(Shirley Meng) 교수가 이끄는 미국 UCSD 연구팀은 지난해 ‘상온 구동 장수명 전고체 배터리’를 LG에너지솔루션과 공동개발해 연구성과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해당 연구는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공동 연구센터에서는 전고체 배터리 및 건식 전극 공정, 리튬메탈 및 리튬황 배터리 관련 기술을 각각 연구 중입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 주행거리 800km, 1000회 이상 충전 횟수
지난 3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1회 충전으로 주행거리 800km, 1,000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연구결과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의 수명과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크기는 반으로 줄일 수 있는 원천 기술을 담고 있는 이 연구내용은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삼성SDI는 2027년 전기차용 전고체 전지 양산을 목표로 추진하고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미국 솔리드파워와 공동으로 차세대 전고체 전지를 개발, 생산하는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 국내 연구기관들 역시 고체 전해질 소재 및 전고체 전지 기술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 2위 전고체 배터리 기업, 국내에 있다고?
국내에 세계 2위의 전고체 배터리 특허 보유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LG에너지솔루션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총 700여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가장 많은 전고체 배터리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 출원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2015년 LG에너지솔루션이 보유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는 45건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4배 이상인 200건을 출원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있어 선두주자는 일본입니다. 지식재산 전문기업 윕스에 따르면, 일본의 도요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고체 배터리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조사기간 2015년~2022년). 도요타가 보유한 특허는 1600여 건에 달합니다. 뒤를 이어 3위는 일본 파나소닉, 4위는 후지필름이 차지했고 5위와 6위는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기록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에 대해 조금 이해가 되셨나요? 함께 알아보고 나니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될 그 날이 더욱 기다려지는데요. 체인라이트닝은 세계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의 순위권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국내 연구진과 기업들을 응원합니다.